
‘써니’라는 영화를 처음 본 건, 아주 오래전도 아니었고, 아주 최근도 아니었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아마 자취방에서 혼자 밥 먹으며 유튜브 알고리즘에 툭 튀어나온 클립 하나 때문이었을 거다. 춘화가 친구들 앞에서 담배를 피우며 "이래도 안 무서워?"라고 말하던 그 짧은 장면. 웃기지도 않은데 괜히 뭔가 찡했다.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전체 영화를 찾아봤다.
사실 처음엔 그다지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복고 감성, 여고생 우정 이야기, 뻔한 설정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시간이 지날수록 영화의 인상이 뿌옇게 사라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또렷해졌다. 대사가 아니라 장면이, 감정이 먼저 떠오르는 영화랄까. '써니'는 그렇게 내 머릿속에 남아 있는 영화 중 하나가 되었다. 그래서 지금 다시 이 이야기를 꺼내보고 싶어졌다. 잊고 있었던 그 시절의 공기, 감정, 그리고 사람들에 대해.
그 시절의 풍경
‘써니’를 보면, 진짜 이상한 기분이 든다. 1980년대는 내가 살았던 시대도 아니고, 사진이나 다큐로나 접해본 시간인데도 묘하게 익숙하다. 영화 속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거리 풍경, 학생들의 교복 모습 하나하나가 다 낯설어야 정상인데, 왜 그렇게 따뜻하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서울 강남도 지금처럼 번쩍이기 전이었고, 학생들은 스마트폰 대신 잡지를 봤고, 길거리엔 LP판과 카세트테이프 가게가 줄지어 있었다. 불편하고 아날로그틱한 풍경이지만, 그게 오히려 사람 냄새를 풍겼다.
나미가 처음 전학 오는 장면이 기억난다. 어눌한 사투리, 꾹 다문 입술, 시선처리 하나하나에서 낯섦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런 그녀를 받아준 건 다름 아닌 그 시대였다. 지금은 누군가를 받아들이기 위해 너무 많은 조건이 필요한 세상 같다. 취향, 외모, 말투, 집안, 속도까지도. 그런데 그 시절의 ‘써니’ 멤버들은 좀 달랐다. 거칠고 투박했지만, 본능적으로 ‘우린 같은 편이야’라는 감각이 있었던 것 같다.
나는 그게 바로 80년대라는 시대의 공기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과거를 미화하려는 게 아니다. 그땐 지금보다 불편하고 거칠었지만, 그래서 오히려 감정에 솔직했던 것 같다. 좋아하면 웃고, 싫으면 화내고, 상처받으면 엉엉 울 수 있었던 시절. 그게 부럽다. 요즘은 감정도 계산해서 표현해야 하는 세상이니까. 영화 ‘써니’는 그 시절의 불완전함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그래서 더 인간적이다. 그게 이 영화의 큰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기억 속 친구들
‘써니’를 보다 보면, 등장인물 중에 누구 하나쯤은 꼭 내 친구랑 겹친다. 아니, 어떤 경우엔 나 자신이 보일 때도 있다. 나미는 처음엔 뭔가 눈치 보고 조심스러운데, 시간이 갈수록 자기 자리를 만들어간다. 전학 와서 친구들 무리에 껴보려 애쓰던 나도 예전에 저랬지 싶었다. 괜히 한마디 말 꺼냈다가 어색해지고, 집에 가면서 괜히 그 말 후회하고. 나미의 서툰 행동 하나하나가 웃기면서도 짠했다.
그리고 춘화. 진짜 멋진 친구였다. 겉으로는 늘 당당하고 쿨한 척하지만, 그 안에는 누구보다 여린 마음이 있었다. 리더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었던 사람. 예전에 나도 그런 친구가 있었다. 다들 의지했지만, 결국 가장 힘든 일을 혼자 견디던 아이. 영화를 보다가 그 친구 얼굴이 자꾸 떠올라서, 이상하게 춘화의 장면에서는 유독 집중이 안 됐다.
장미, 복자, 금옥, 진희, 수지. 이들의 캐릭터는 다 개성 강하고 뚜렷하다. 그런데 그 개성들이 억지스럽지 않아서 더 좋았다. 잘 꾸며진 드라마 속 인물들이 아니라, 진짜 어디선가 마주쳤을 법한 사람들 같았다. 욕 잘하는 친구, 늘 먹을 거 들고 다니는 친구, 말 없지만 눈빛으로 다 표현하는 친구. 내 친구들이랑 닮은 구석이 참 많았다. 어릴 땐 몰랐지만, 나이가 들수록 그런 친구들이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깨닫게 된다.
‘써니’의 친구들이 좋았던 이유는, 서로의 모난 부분까지 받아주는 관계였기 때문이다. 다들 삐뚤고 서툴렀지만, 그래서 더 단단했다. 말없이 챙겨주고, 괜히 툭 던진 말에도 진심이 담겨 있었던 그 시절. 나는 요즘도 가끔 그 친구들이 그립다. 연락은 뜸해졌지만, 아마 만나면 여전히 웃고 떠들 수 있을 거다. ‘써니’는 그런 믿음을 주는 영화다. 우리 사이도 그랬다고, 지금도 어딘가에 살아 있다고.
마지막 장면
영화 후반부에서 춘화가 시한부 판정을 받고, 나미가 친구들을 찾아 나설 때쯤부터 나는 몰입을 넘어서 거의 숨죽이고 봤다. 그 장면들이 유난히 조용하고 담담했기 때문이다. 억지로 울리려는 음악도 없고, 누구 하나 감정 폭발을 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너무 담백해서 더 울컥했다. 삶이 그렇듯, 진짜 중요한 순간은 늘 그렇게 조용하게 찾아오는 것 같다.
친구들을 하나하나 찾아가는 과정도 참 좋았다. 누구는 바쁘고, 누구는 피곤하고, 누구는 이미 삶에 치여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결국, 다들 모인다. 춘화를 위해, 아니 어쩌면 자신을 위해. 마지막 파티 장면에서 춘화가 아무렇지 않게 웃고, 친구들도 웃으며 춤추는 장면이 있다. 그 장면이 참 오래 기억에 남는다. 너무 아프고, 너무 좋고, 너무 늦은 시간이 겹쳐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며 예전 친구 하나가 떠올랐다. 연락을 끊은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더 이상 연락하지 않는 그런 친구. ‘내가 먼저 연락하면 민폐일까?’ 그런 생각 때문에 놓아버린 관계. 아마 ‘써니’ 속 친구들도 그런 시간이 있었을 거다. 하지만 결국 그들은 다시 만난다. 웃고, 떠들고, 또 헤어지겠지만, 그 하루가 누군가에게는 평생 남을 기억이 된다. 춘화에게도, 나미에게도, 그리고 우리에게도. 그게 이 영화의 결말이 주는 힘이었다.
‘써니’는 결국, 우리 이야기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 속에서 특별했던 누군가를 떠올리게 하는 영화. 보고 나면 뭔가 울컥하면서도, 따뜻해지는 이상한 영화. 당장은 연락할 수 없더라도, 내 마음속 어딘가에 여전히 웃고 있는 그 친구를 꺼내보게 만든다. 그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충분히 오래 기억될 이유가 있다.